작은 찻상이,
작고 외로운 인간을 변화시킨 순간
《돌봄의 찻상》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가 자신의 단골다방들을 비롯해 유명한 차점 등을 탐방하며 찻상 세계를 탐구한 이야기와 찻상 앞에서 스스로에게든 무언가에게든 돌봄을 받은 이야기가 각 에피소드에 녹아들어 있다.
거리에 가스등이 남아 있고 아직 휴대전화 사용이 대중적으로 퍼지지 않은, 아날로그 시대의 런던에서 유학하던 저자의 초라한 책상 위에는 늘 밀크티 한 잔과 다이제스티브가 올라 있었다. 기숙사의 고독한 한국인 학생들은 이 별것 아닌 단출한 찻상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외국 생활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파리에서 저자는 1911년 문을 연 뒤 피카소, 헤밍웨이 등의 예술가들이 자주 찾은 로톤드 다방을 자신만의 단골다방으로 삼아 일상을 보내고, 런던에서 유명한 차점들을 돌아다니면서 맛과 향의 세계를 탐구하고, 애프터눈티를 비롯한 영국 찻상들을 차리는 법을 배운다.
통영에서는 매서운 추위에 코를 훌쩍이면서도 근현대 살롱문화의 흔적을 좇고, 뉴욕 하이엔드 호텔 칼라일에서는 이웃들로부터 따뜻한 티타임을 선사받는다. 갑상선암이 의심된다는 건강 진단을 받고 전전긍긍하느라 지친 마음이 훈기에 휩싸인 순간이었다.
마침내 복잡한 대도시 순례 생활을 접고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 햄프턴으로 이주한 저자는, 매일 풍부한 자연에 둘러싸여 다람쥐와 사슴 무리가 함께하는 다회를 연다. 찻잔을 비우면서 쓸모없는 고민과 후회를 함께 비우고, 그 비워진 공간에 다시 윤택한 감정과 오늘의 삶이 차오르는 것을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