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까지 충청지역을 대표하던 공주가 어떻게 ‘근대’를 맞이했는지 그 구체적인 이야기를 살핀다. 호서의 수부도시였던 공주는 근대의 도전에 직면해 변화를 강요받고 원하지 않는 모습을 수용해야 했다. 철도가 비켜 간 후 교통상의 이점을 놓친 공주는 충남도청과 지방법원이 대전으로 옮겨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전의 번성함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신작로와 신식 건물이 들어서고, 신식 교육을 받은 새로운 사람들이 탄생했다. 3.1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유관순도 공주에서 근대 시민의 기초 자질을 익히고 민족의식을 가진 여성 독립운동가가 되었다. 그리고 공주는 ‘교육도시’ ‘역사도시’로 도시 브랜드를 만들어가며 내실을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