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신간<사피엔스와 바이러스의 공생> 출간

관리자
2020-10-29
조회수 1409

인류 역사와 문명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책, 인간과 문명은 감염병과 어떻게 공생하게 되었나

코로나19로 감염자 비감염자 다 함께 음울한 시대. 마지막 희망이던 백신 개발이 난항을 겪고 있고 인류 역사는 코로나 유행 이전과 이후로 명확하게 나뉠 게 확실해 보인다. 훗날 백신 개발에 성공해도 인류 역사를 돌아봤을 때 새로운 바이러스, 미지의 감염병이 계속해서 등장할 것은 확실하다. 그럼 코로나19를 비롯해 미지의 감염병과 함께해야 하는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여기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 말라리아의 일종인 열대열 말라리아는 주로 아프리카 서부에서 기승을 부렸다. 임산부와 유아에게 특히 치명적이었던 이 병으로 인해 지역 사회는 그 존립마저 위협받았다. 아직 치료제도 없던 시기, 인간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당시 서아프리카 사람들은 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다. 동그란 모양이어야 할 적혈구가 초승달 모양이 되면서 신체 각 부위에 제대로 산소를 공급하지 못하는 병이다. 유전자형에 따라 중증과 경증으로 나눌 수 있는데, 중증의 경우 온갖 합병증을 앓다가 제명을 못살고 죽지만 경증이라면 가벼운 빈혈을 앓는 정도로 끝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 환자들은 말라리아에 걸려도 증세가 가볍고 생존율도 높다. 제 기능을 못하는 적혈구 때문에 말라리아 병원균의 증식까지 억제되기 때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서아프리카 지역 주민 중 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 환자의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다고 한다. 말라리아로 생존의 위기에 처한 인체가 또 다른 병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뜻이다. 이로써 해당 지역 사람들은 빈혈증과 함께하는 삶을, 그리고 말라리아와 함께하는 삶을 이뤄냈다. 양쪽 모두 무서운 질병이지만, 피할 수 없다면 생존법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세계 어디로 가도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가 가슴에 새겨둘 만한 이야기다.


감염병과 인간의 불편하지만 오래된 동행, 그 연대기를 쓰다

《사피엔스와 바이러스의 공생》은 19세기 외딴 섬에서 유행한 홍역 이야기로 시작한다. 홍역이 지속적으로 유행하려면 일정한 장소에 수십만 이상의 사람이 몰려 있어야 한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 감염병과 함께 시작된 건 그 때문이다. 이후 여러 질병이 인간 사회에 떠돌며 숱한 생명을 앗아갔고, 그때마다 역사의 흐름은 몇 번이나 굽이치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이르렀다. 이 격류 속에서 인류도 부단히 노력했다. 항생제와 백신을 개발하며 치명적인 질병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냈으니까. 특히 20세기 냉전기에 동서 양 진영이 손을 맞잡고 이뤄낸 천연두 퇴치는 인류사에 길이 남을 쾌거였다. 마침내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에볼라, 에이즈, 사스 등 새로운 병이 속속 등장했고 오늘날에는 코로나19가 나타나 인류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다면, 이 수천 년의 여정 끝에 우리가 얻은 교훈은 무엇일까?


인간과 바이러스, 왜 공존할 수밖에 없는가

성인 T세포 백혈병 바이러스는 평균 잠복 기간이 50~60년으로 감염자의 약 5퍼센트만이 발병한다. 사실상 무해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래도 완전히 없는 편이 낫지 않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 사실을 유념하자. 바이러스는 비슷한 지위를 가진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와 경쟁한다. 이 말인즉, 일단 체내로 들어온 무해한 바이러스는 몸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다른 유해한 바이러스가 들어올 자리를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만일 성인 T세포 백혈병 바이러스가 완전히 박멸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 바이러스를 무력화하기 위해 우리 몸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든 면역체계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고 이 바이러스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바이러스가 침투할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점잖은 전임자와는 비교도 못할 만큼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질병은 박멸만이 답이 아니다. 일말의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인간이 질병에 적응해 살아가듯 질병 역시 그 나름의 방식대로 인간에 적응하며, 그 과정에서 공존의 길이 발견될 수 있다. 바로 이 길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사피엔스와 바이러스의 공생》은 말한다.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전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이때, 새로운 관점을 갖고 우리가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해보자.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특별한 편지

저자 야마모토 타로는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을 보내왔다. 한국에 대한 그의 관심과 따뜻한 성품을 알 수 있는 서문이었다. 그는 이번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화 시대 주요국가로 부상한 이후로 한국이 처음 경험하는 ‘감염병에 의한 생명의 위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종종 위기가 찾아오겠지만 결국에는 슬기롭게 극복해나가리라 믿고 있다고 한다.

자신은 코로나 바이러스 긴급사태가 선언된 일본 오키나와현 코로나 대책본부로 급히 발령되어 방역·치료 계획을 세우는 틈틈이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을 쓰면서,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문명과 감염병에 관해 궁극적인 의문을 품어보길 소망한다고 한다. 인류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환경을 지배는 종으로 발돋움했다. 20세기부터 여러 전염병을 퇴치하고 팬데믹을 차단했다. 저자도 지난 30년 동안 북미와 아프리카를 포함해 전 세계를 돌며 치명적인 전염병을 막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며 인류와 감염병의 관계에 전부터 품어왔던 의문이 더욱더 깊어졌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의외의 생물을 매개로, 미지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우리 인류가 앞으로 더욱 발전된 과학 기술을 손에 넣는다 한들 감염병을 완전히 근절할 수 있을까? 아니, 정말로 근절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품으면서도 자신은 의료인으로서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결코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이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들과 오늘도 싸우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K-방역의 성공으로 한때 팬데믹 종식을 앞뒀지만 수도권의 대규모 감염사태를 겪고 사회적 거리두기 1, 2단계를 오르내리고 있다. 과연 이번 팬데믹은 언제 끝날 것인가? 다음으로 인류를 위협할 미지의 바이러스는 어떤 것일까?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살아가는 한국 독자들에게 인류와 감염병의 미래를 통찰하는 《사피엔스와 바이러스의 공생》은 매우 의미심장한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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